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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성장의 핵심은 마케팅보다 이미 존재하는 유입 경로를 어떻게 설계에 편입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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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마켓플레이스에서 프로덕트는 차별화 요소일 뿐, 승부는 세일즈를 통한 입점사 및 유저 트래픽 확보 능력에서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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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작동한다는 증거와, 그 시장이 투자에 적합한지는 완전히 다른 판단 영역이다.
또 다시 창업의 길을 선택하다
Rovyn은 의욕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오히려 한 번의 실패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시도였다.
Nearville을 통해 나는 무작정 “미국에서 서비스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실행에 옮겼다. 더 큰 시장, 더 복잡한 문제, 더 넓은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 선택은 꽤나 추상적이었던 것 같다.
가장 치명적이었던 부분은 내가 미국 사람들의 생활을 거의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어떤 지역에 어떤 가족 형태가 많은지, 평균 소득이 어느 정도인지, 생활비에서 무엇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지, 물건이 고장 났을 때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이웃과의 관계는 느슨한지 촘촘한지. 서비스의 기반이 되는 일상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그 상태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설계하고, 비즈니스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허공에 건물을 짓는 일과도 같았다.
Nearville을 정리한 이후, 나는 내가 매일 관찰할 수 있는 시장, 그리고 내가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영역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언제나 이미 존재하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시장을 다시 바라보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K-뷰티는 그야말로 이미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되어 있었다. 인바운드 관광객 역시 꾸준히 늘고 있었고, 한국에 오면 로컬 뷰티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외국인 관광객의 입장에서 피부과는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웠다. 대부분 영어·중국어 상담이 가능하고, 외국인을 위한 콘텐츠와 정보도 넘쳐났다. 하지만 미용실이나 네일샵 같은 로컬 뷰티 서비스는 이야기가 달랐다.
레딧과 같은 해외 커뮤니티를 뒤져보니 한국 네일샵 예약을 하기 위해 한국에 살고 있는 지인, 혹은 지인의 지인을 통해 한국 계좌로 예약금을 대신 송금하도록 했다는 내용과, 본인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댓글, 그리고 수많은 리포스트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호주에 거주하는 친구의 힘을 빌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거나 한국에 관심있는 외국인 50명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역시 그들도 같은 문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문제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이 영역은 누구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지점이 Rovyn의 출발점이 되었다.
당장 개발보다는 검증부터
Nearville에서 배운 가장 큰 레슨 중 하나는 MVP를 만드는 것과, 비즈니스가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Rovyn에서는 의도적으로 앱을 바로 만들지 않았고, 복잡한 기능을 설계하지도 않았다. 대신 아래 가설들을 검증할 파일럿 프로그램을 먼저 설계했다.
- 외국인 관광객은 예약금을 송금 문제로 네일샵 예약을 어려워할 것이다.
- 외국인 관광객은 카카오톡/네이버 플랫폼을 통한 예약을 어려워할 것이다.
- 국내 네일샵 사장님들은 외국인 관광객 노쇼와 예약 관리 문제를 겪고 있을 것이다.
네일샵을 선택한 이유
초기 타겟은 1인샵 위주의, 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많은 지역 (홍대, 강남, 성수)의 네일샵으로 명확하게 정의했다.
네일샵은 문제 구조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도메인이었다. 첫째, 예약금 문제가 있었다. 네일샵은 보통 카카오톡 상담 후 계좌이체로 예약금을 받는다. 하지만 외국인은 한국 계좌가 없어서 예약금을 받지 않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 노쇼가 잦다. 1인샵에게 한 타임의 노쇼는 하루 매출의 상당 부분을 날리는 일이다.
둘째, 사전 상담이 거의 필수다. 연장 여부, 제거 여부, 디자인 난이도에 따라 가격과 소요 시간이 완전히 달라진다. 외국인 손님의 경우 언어 장벽과 시차까지 겹치면서 상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고객들은 가격 대비 퀄리티, 위생 수준, 디자인 감각 때문에 한국 네일샵을 찾는다.
TBU
1차 파일럿 프로그램 - 마케팅비 0원으로 수익 내기
1차 파일럿 프로그램의 구성은 개인 PayPal 계정 + 개인 WhatsApp 계정 + 입점 리스트 페이지와 개별 샵 예약 페이지가 끝이었다. WhatsApp으로 필수 사전 정보를 수집하고 상담을 진행한 뒤, PayPal로 시술 금액을 송금받았다. 우리는 고객과 네일샵 양쪽에서 수수료를 받는 구조로 설계했다.




Rovyn MVP 파일럿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인사이트는 마케팅이 아니라 유입 경로에서 나왔다. 외국인 고객들은 이미 주로 인스타그램 채널을 통해 네일샵을 찾고 있었고, 예약 시도는 대부분 DM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자연 트래픽이 발생하고 있는 네일샵 인스타그램 프로필을 진입점으로 사용하는 전략을 취했다.
관광객 유동이 많은 지역의 네일샵 약 250곳을 리스트업하고, 콜드콜과 DM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80곳 중 4곳만 입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메시지를 다듬고, 구조를 설명하는 방식이 정교해지면서 총 20곳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
입점된 네일샵의 상세 예약 페이지를 인스타그램 프로필 링크에 연결하도록 했다. 광고비는 0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바로 매출로 이어졌다.
우리는 매주 WBR을 진행했고, 매주 약 2배 성장, 4주 만에 8배 성장으로 성장 곡선은 명확했다. 아, 이 문제를 해결해 주면, 사람들은 돈을 내는구나!
가설은 검증된 상태였고, 다음 단계로는 Stripe 도입, 미국 법인 설립, 메신저 채널 확장까지 빠르게 움직였다.
5번의 VC 미팅, 그리고 5번의 거절
우리는 빠르게 IR을 준비했다. 이 아이디어와 실행력이라면 빠르게 시드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피치덱을 준비했다.
약 2개월 동안, 총 5개의 VC와 투자 검토 미팅을 진행했다. 피드백은 일관적이었다.
- 인바운드 관광객 시장 규모의 한계
- 로컬 뷰티샵의 확장성
- 낮은 unit economics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었다.
“이게 프로덕트 싸움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AI 기반 자동 상담 에이전트, 예약 관리 시스템은 이 질문 앞에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아졌다. 이 시장에서의 승부는 더 많은 입점과 더 강한 마케팅으로 인한 높은 트래픽일 가능성이 높았다. 프로덕트는 차별화 요소이지, 결정적 무기가 아닐 수도 있었다.
사업을 접으며
Rovyn은 내가 10년 동안 몰두해서 만들어갈 비즈니스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실험을 설계하고, 거래를 발생시키고, 시장의 냉정한 피드백을 받는, 0에서 1까지의 전 과정을 온전히 경험했다.
비즈니스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배우게 해준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이 경험은 이후 어떤 아이디어를 보더라도, 훨씬 더 빠르게 본질을 가늠하게 만들어주었다.